일을 잘할수록 왜 퇴근이 늦어질까?

출근할 때는 분명 같은 시간에 들어왔다. 그런데 퇴근 시간이 되면 이상하게도 어떤 사람만 자리에 남아 있다. 일을 못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일을 잘해서 그렇다. 손이 빠르고, 실수가 적고, 맡기면 정리가 되니까 또 맡겨진다.
처음에는 고맙다는 말을 듣는다. 잠깐 고생 좀 해달라는 분위기도 있다. 심지어 내가 해결해주는 '해결사' 느낌도 들어서 뿌듯하다. 그런데 그 고생이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느 날은 누군가가 놓친 일을 대신 처리하고, 또 어느 날은 담당자가 바뀌었다는 이유로 받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본업 옆에 남의 일이 덕지덕지 붙는다. 회사는 그걸 협업이라 부르지만, 당사자는 슬슬 자기 업무가 무엇이었는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중소기업에서는 꽤 자주 보이는 장면이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일이 빨리 끝난다. 그러면 상사는 그 사람에게 더 얹는다. 반대로 일이 느린 사람은 끝까지 남는다. 상사는 그 사람을 계속 붙잡고 있으면 손해를 본다. 결국 눈앞의 일을 가장 빨리 끝낼 수 있는 사람에게 일이 몰린다. 별다른 철학이 있는 게 아니다. 그냥 편해서 그렇다.
더 깊은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한두 번의 예외가 습관이 된다. 오늘은 급하니까, 이번만 부탁한다, 지금 아니면 답이 없다, 담당자가 퇴사했다는 말이 이어지면 경계선은 금방 흐려진다. 상사 입장에서는 문제를 해결한 것뿐이지만, 직원 입장에서는 사실상 새로운 업무를 이관받는 셈이다. 이름은 임시지원이지만 실상은 고정업무다.
경영진의 태도도 이해 못 할 것은 아니다. 작은 회사일수록 사람 한 명이 빠지면 바로 빈칸이 생겨버리고, 누군가가 매꿔주지 않으면 거래처가 흔들리고, 생산이 밀리고, 민원이 쌓인다. 그러니 당장 눈앞에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맡기고 싶어진다. 조직 전체가 급한 불을 끄는 데 익숙해져 있으면, 시스템을 고치는 일보다 누군가가 빨리 때워주는 일에 익숙해지고 기대는 습성이 생긴다.
문제는 그 편함이 계속 누적된다는 점이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대체로 묵묵하다. 말이 많지 않고, 맡은 일은 책임감 있게 처리한다. 상사 입장에서는 이런 사람이 참 고맙다. 따로 달래지 않아도 돌아가고, 큰 소리 칠 일도 적고, 사고도 덜 난다. 그래서 더 쉽게 기대게 된다.
인사팀장 입장에서는 이 장면이 늘 불편하다. 일을 잘하는 사람을 알아보고 정당한 보상을 하며 키워야 하는데, 실제 현장에서는 반대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평가가 있어도 주관이 섞이고, 보상이 있어도 한정적이며, 육성은 구호로만 남기 쉽다. 그러니 열심히 하는 사람은 점점 더 많은 일을 떠안고, 정작 보상은 느리게 오거나 아예 오지 않는다. 오래 버틴 사람이 손해를 보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당사자도 이쯤 되면 눈치를 챈다. 내가 빨리 해결하면 내 일이 남들보다 빨리 끝나고 한 숨 돌릴 수 있는게 아니라 내가 해야할 일이 더 늘어난다는 사실을. 그 순간부터는 무작정 성실함만 믿고 열심히 움직이면 안 된다. 일을 잘하는 것과, 잘하는 티를 내는 것은 다르다. 여기서는 '티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회사가 알아서 나를 알아봐주고 챙겨주길 기다리는 것과, 내가 한 일을 내 성과로 남기는 것도 다르다.
그래서 필요한 건 속도를 조금 조절하는 일이다. 모든 걸 다 떠안지 말고, 처리한 일은 남겨야 한다. 메일이나 보고서에 과정을 기록하고, 항상 상사나 관계 부서를 참조에 걸어 누가 무엇을 맡았는지 흔적을 남겨야 한다. 평소엔 묵묵히 일하더라도 평가나 면담 자리에서는 그 과정을 꺼내야 한다. 알아주지 않으면 끝이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야 한다. 회사는 종종 열심히 한 사람보다, 열심히 한 흔적을 본다. 면전에서 생색을 내야 본인들도 양심의 가책을 느껴 챙겨주는 척이라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일을 다 할 줄 알아도 다 하겠다고 해서는 안 된다. 남들이 1시간 걸리는 일을 본인은 10분 만에 끝낼 수 있어도, 가끔은 어렵다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기준이 무너지지 않는다. 회사는 선의를 무한정 배려로 바꾸고 영혼까지 갈아넣도록 만드는데 익숙하다. 그러니 일 잘하는 사람일수록 더 분명한 선이 필요하다. 퇴근이 늦어지는 이유는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경계가 없어서다. 그 경계는 남이 아니라 스스로 그어야 한다. '프로'는 돈을 받고 그만큼의 일을 하는 전문가를 뜻한다. 월급을 받는 사람도 '프로'다. 어느정도는 이기적으로 일하되 전문성은 놓치지 않는 몸값 비싼 '프로'가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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