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멀쩡한 회사가 없나? 네 없습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한탄한다. “왜 이 바닥엔 멀쩡한 회사가 하나도 없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적어도 중소기업이라는 범주 안에서 우리가 꿈꾸는 ‘멀쩡한 회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선언에 누군가는 적잖이 경악할 것이고, 누군가는 “당연한 소리를…”이라며 덤덤하게 냉소를 보낼 것이다.
사실 이 세상에는 기업이라는 집단이 객관적으로 멀쩡한지를 가늠하는 척도는 없다. 오직 “이 정도면 버틸 만하다”거나 “이건 선을 넘었다”는 식의 지극히 개인적인 임계점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토록 멀쩡하지 못한 환경에 놓여 있는가. (물론 사막에서 바늘 찾기 수준의 확률로 존재하는 ‘좋은 회사’는 논외로 한다.) 이 현상을 이해하려면 인간, 그리고 인간 집단이 가진 원초적인 심리를 들여다봐야 한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거대 자본의 투입이 아닌, 작은 사무실이나 개인 자영업 수준의 ‘팀 단위’ 창업에서 시작한다. 운 좋게 좋은 아이템을 만나고, 누군가의 탁월한 영업력과 마법 같은 설계 능력이 더해지면 매출이 발생한다. 10명 남짓의 소기업에서 100명 단위의 중소기업으로 성장하는 드라마가 쓰이는 시점이다. 그러나 성장은 대개 여기서 멈춘다. 조직 전체를 아우르는 ‘시스템’이 들어설 자리에 여전히 ‘개인의 초능력’이 군림하고 있기 때문이다.
능력 있는 대표, 영업의 신이라 불리는 부장, 공장장 등 특정 인물의 역량에 회사의 명운이 걸리다 보니, 그들에게는 자연스럽게 특별한 권한과 혜택이 부여된다. 이때 조직 내에는 실세와 그를 따르는 무리가 형성되고, 그 견고한 성벽 밖에는 외부에서 유입된 ‘타인’들이 존재하게 된다. 누군가는 묻는다. “그런 능력자들이 회사를 키운 것 아닌가?”라고. 맞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들이 성장을 이룬 뒤에도 그 권력을 시스템에 이관하지 않고 여전히 개인의 영향력 아래 회사를 두려 한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수많은 이해관계의 충돌이 발생한다. 창업 멤버를 비롯한 핵심 인력은 자신들이 일궈놓은 과실을 최대한 많이, 그리고 오래 독식하려 한다. 중소기업이라는 파이는 필연적으로 작을 수밖에 없기에, 이를 나눠 먹기 위한 경쟁은 생존을 건 투쟁이 된다. 기득권은 밥그릇을 지키려 이기주의를 팽배하게 만들고, 새로 들어온 이방인은 그 견고한 틈을 비집고 들어가 자신만의 작은 생태계를 구축하려 든다. 때로는 노련한 외부인이 이 조직적 결점을 파고들어 또 다른 권력 다툼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겪는 모순의 실체다. 구성원의 합의하에 만들어진 ‘시스템’이 아니라, 창업 당시의 원초적인 영향력을 유지한 채 회사가 운영되길 바라는 욕망. 제삼자인 신규 인력의 눈에 이 모든 과정은 지극히 멀쩡하지 않은 부조리로 비친다.
인사팀장의 시선으로 보면 이러한 모순의 덩어리들은 너무나 투명하게 보인다. 왜 유능한 인재들이 적응하지 못하고 떠나는지, 왜 회사의 성장이 멈춘 채 겨우 유지에 급급한지, 왜 신사업은 매번 공염불로 끝나는지. 모든 원인은 이 ‘시스템을 거부하는 욕망’에서 시작된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 현상을 개선해야 할 권한을 가진 사람조차 모순의 중심에 서 있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점이다. 고치려 들면 자신의 권력 기반을 무너뜨려야 하기에, 그들은 결코 스스로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바꿀 수 없는 현실을 냉정하게 인지해야 한다. 이 혼란과 부조리 속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으며 자책할 필요는 없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니들도 똑같네.”라는 마음으로 가볍게 흘려보낼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멀쩡하지 않은 세계에서 나를 지키며 적응해 나가는 최선의 방어기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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